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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여행 의 기억

kimys508 2023. 5. 8. 22:57

호주 여행의 기억
 

세계 3대 미항인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 의 필자

 

주해실업  현지직원

 

호주 시드니 대학생들 과 필자

 

시드니 오페라하우스부근 하버 브릿지 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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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 지나 여름으로 접어들 6월 말 경인 것 같다. 대한무역진흥공사가 주최하는 호주 시드니 박람회 때 참가하며 얻은 기억들을 정리해 본다.
무역 회사를 창업한지 직전이라서 호주에 대한 정보가 별로 없던 시절이다. 해외여행도 자유화가 되지 않았고, 여권 내기도 어려웠던 시절이다. 코트라 는 많은 회사가 참가를 원하는 탓에 무역거래 실적과 해외 박람회 참가 실적 등을 따져보고, 오더 수주 가능성을 보고 참가 결정을 내리던 시절이다.
무역을 시작할 초에는 일본과 미국 시장에 편중되어 있어 호주에 관한 자료가 드물었던 때였다.
우선 무역을 하려면 상대 국가의 인구, 경제 사정 등등을 챙겨봐야 하는데, 인구는 당시에 2,400만 명 넘는 정도(서울과 경기도 인구 정도)이고, 교역도 많지 않던 시절이였으리라.
우선 교역을 하려면 선박 사정이 좋아야 하는데 호주는 선박
사정이 별로 좋지 않고, 운임도 엄청 비쌌다.
그 이유는 유럽의 선박편은 완행열차도 있고, 급행열차도 있다. 완행열차는 예를 들어 프랑스 ‘르아브르’ 항을 가려면 한국의 부산에서 출항해 대만을 들러서 대만행 화물을 내리고 다시 유럽 가는 대만의 짐(상품)을 싣는다. 그리고 다시 홍콩으로 향하고 홍콩에서도 상품을 내리고 올린다. 가면서 베트남, 태국, 콜롬보, 인도 아랍국가들을 거친다.
파키스탄 사우디 예멘을 거쳐 수에즈 운하를 통과해 카이로, 그리스, 이태리, 스페인, 포르투갈을 거쳐야 프랑스 ‘르아브르’
항에 도착하지만, 호주는 부산에서 출발하면 거치는 나라가 없다. 오직 그 배는 호주만 간다. 중간중간 상품이 나가고 싣고 해야 운임이 저렴한데 호주는 그것이 없다는 얘기다.
거리는 미국의 3/2인데, 선박 운임은 보통 2배, 3배였다.
경공업을 팔아서 미국 운임의 몇 배를 내고, 오더를 수주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래도 새로운 시장 개척으로 생각하고 박람회 준비를 하고 떠날 날을 기다렸다. (물론, 전시할 상품은 두 달 전 선편으로 보냈다.) 참가한 무역 회사가 50개사 정도 되었는데 중소기업은 몇 업체 없고, 주로 대기업이 참여한 것 같다.
나는 KOTRA 박람회를 수 차례 참가한 실적이 있어 이번에도 한국 세일즈맨단 인솔 단장을 맡았다.
비행시간은 10시간 정도 걸린 것으로 기억된다.
시드니 도착한 후,에 시드니 공항 밖을 보니, 눈이 엄청 많이 내린 것을 보고 그때서야 우리와 기후가 반대라는 것을 알았다. 얻은 정보로는 영상 5°C~10°C 정도로 알고 떠났는데...
전시 기간에 알게 된 놀라운 사실은 시드니에는 사람이 안 다닌다. 해가 떨아 지면 중심가도 사람이 거의 없다.
KOTRA도 시드니 전시회를 전략적으로 개최했겠지만, 참가업체 모두가 실망스러워 했던 기억이 있다.
무역업체가 한곳의 전람회를 참가하려면 최소한 1,000만원 이상의 경비가 든다. 물론 천만원의 경비를 조달하려면 1억원 정도의 수주가 있어야 천만원의 비용이 나오던 시절이다. (수출마진 10~15%)
전시회는 소정의 성과도 내지 못하고 전시 기간 1주일을 보냈다. 몇몇 바이어가 명함을 주며, 전시회가 끝나면 들러 달라는 사람이 있었으나, 거리가 보통 차로 8시간 이상 걸리고 비행편도 좋지 않을 때였다.
포기하고 대강 마무리하고 귀국 전, 인근 지역으로 관광이라도 하려고 투어버스를 타고 시드니 시내 관광을 하던 중에 옆자리에 호주인을 가깝게 알게 되었다. 멜버른에서 시드니에 일 때문에 왔다고 했다. 하루를 투어버스와 식당에서 지내며 헤어질 때 명함을 주고받았다. 그로부터 몇 년이 흘렀다.
어느날 오후 사무실에 있을 때,  호주 알게된 그분의 전화가 왔다. (Mrs 스미스로 기억됨) 한국에 잡제품을 수입하려고 한국에 나온다고 해 김포공항에 마중 나가고, 한국에 있는 동안 정성껏 안내했다.
그 분은 내가 수출을 주력하는 제품이 아닌 월렛(Wallet)을 50만개 사겠다고 해서 수출을 대행키로 했다.
수출단가가 1$50센트 정도인데, 수량이 많은 50만불이 넘는 큰 거래였다. 문제는 공장견적이 1$20센트 인데, 오퍼상 마진없이 1$50센트를 1$20센트에 맞추어 달라는 것이다.
나는 여러 가지 생각도 않고, 우선 금액이 크고, 호주에서 베풀어준 호의 등으로 그렇게 하기로 하고 오더를 받았다.
모든 일이 서로 가깝게 지내다 보면, 비즈니스보다 인간적 친교가 훨씬 앞선다고 생각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그 후로 나는 그분과 오랜기간 거래를 하며 호주와 한국을 오가며 좋은 친구 관계로 발전하였다.
이제는 거래하고 있지 않지만, 오래전 기억 속 호주친구 스미스는 잘 있을까 가끔 생각나는 친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