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2023년 4월 4일 오전 9시 반 경에 그의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다.
나와는 지난 30여 년간 수많은 공연을 해왔다.
처음 만나 출연 제안 때 밝고 명랑했던 얼굴이 떠오른다. 이촌동 집을 이사할 때 옷방에 옷을 수백 벌 걸 수 있도록 헹거를 설치해 주었다.
나하고는 디너콘서트도 14년이나 해왔는데, 지난주 돌아가시기 전 70주년 공연을 하자고 약속했는데..
이제는 그분의 작품을 더는 할 수 없게 되었다. 우리나라 가요사에 그분 만한 가수는 안 나올 것이다.
공연 때마다 스텝들 점심과 저녁식사를 엄청 많이 싸 오셔서 스텝은 물론 악단, 코러스, 무용팀 등 공연 전 배불리 먹어 공연에 지장 받을 만큼이나 폭식을 하곤 했다. 아마도 이젠 노래와 입담 좋은 현미 같은 가수는 나오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많은 가수들이 현미선생 돌아가셨다는데 진짜냐, 가짜냐 묻는 전화를 많이도 받았다. 처음 디너쇼를 제작할 때는 내가 연하인데도 어려워하고 소녀같이 수줍어하던 모습이 떠오른다. 이분은 내가 대학재학땐 학교에 신입생 환영회 초청가수로 오곤 했었다.
아... 아... 아... 현미...
코로나19 때문에, 지난 2019년 10월 31일 '히트가요퍼레이드'가 그녀와 마지막 공연이 되어 버렸다.
가수를은 물론 연예 제작자들도 지난 3년은 어려운 시기였지만 노래만 하던 가수들은 엄청난 경제적 시련이었을 것이다.
현미선생도 가수생활 67년에 가장 어려운 시기라고 토로한 적이 있다.
이번 글을 통해 그의 히트곡을 정리해 본다. 제일 유명한 밤안개, 보고 싶은 얼굴, 떠날 때는 말없이, 아내, 총각김치, 회상, 왜 사냐고 묻거든, 가라지, 몽땅 내 사랑, 포옹, 세월의 길목에서, 별.. 그리고 즐겨 부르던 팝송으로는 데니보이, 다이애나 등이 있다. 그녀의 고향은 북한의 평양이다. 625 동란 때 대가족이 월남한 실향민이다. 나도 황해도이기에 동질감 또한 컸던 것 같다. 우연한 기회에 무용수에서 가수가 된 케이스이다. 매스컴에 많이 소개되기도 했다. 지난 2023년 2월에 그녀가 살던 동부 이촌동 옛날 자장면 집에서 점심을 사겠다고 해서 잘 대접받았는데, 그게 그녀와 마지막 만남이었다. 물론, 그 이후에도 자주 전화가 오곤 했지만 간간이 동영상과 이모티콘도 보내오곤 했는데, 이젠 지나간 추억이 되어 버렸다.
슬프다... 나는 건강을 위해 35여 년 전에 즐겨 마시던 술을 끊었다가 요즘 다시 저녁에 한잔씩 한다. 많은 동료가수들이 슬퍼하겠지만 나는 정말 일을 많이 해서 미운 정 고운 정이 많이 들어 가슴이 먹먹하다.
현미 사망이라는 속보가 뜰 때 나는 문상을 이튿날 다녀왔다. 많은 방송사들의 취재진과 동료가수들에게 자리를 양보할 요량이었다. 4월 4일 사망하고 자녀들이 미국에 거주하는 바람에 3박 4일 지난 4월 7일부터 조문객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나는 조문 첫날 10시부터 조문 시작시간에 맞추어 근조화환을 제일 먼저 보냈다. 그리고 복잡하지 않은 시간에 다녀왔다. 두 아들과 며느리, 조카 한상진, 노사봉, 현미 씨 동생분들, 제부들, 모두 만나 위로의 말을 전했다. 그리고 오늘은 발인날인데, 커 미디언 이용식의 사회와 가수협회장 이자연의 조사로 엄숙히 치러졌다.
두 아들은 화장 후, 유골을 자기네들이 사는 미국 로스앤젤레스로 모신다고 한다. 이곳엔 자손이 없어서라고 한다.
가슴 아픈 일이다. 현미는 본인들 어머니지만, 대한민국 국민가수 현미다. 앞으로도 현미 선생 노래는 방송을 통해 꾸준히 나올 텐데 추억을 기리게 여기 한국에 남아 있어야 된다고 생각한다.
혹시, 기회가 되면 현미 노래비라도, 아니면 현미가요제라도 하게 되면 한국엔 아무런 흔적이 없어 아쉬울 텐데.. 다른 연예인들도 사후에 노래비, 가요제를 하는데 현미 선생은 충분이 자격이 있는 분인데, 자녀의 무지인가, 자녀의 효성인가, 혹시 내가 기회가 되면 하게 될지도 모르지만..
엄청난 분량의 자료가 나에게 남아 있고 지난 2012년 하얏트 호텔에서 고 이봉조 추모 25년, 현미 가요 55주년, 한국가요 55주년 기념공연 때 하얏트 호텔 로비에 현미선생 사진전을 해 드렸었다.
그 사진 자료가 어마어마한 분량을 갖고 있건만 아쉽기 만하다. 누군가 해야 된다면, 형편과 기회가 된다면, 나라도 하고 싶다. 국내에 가수 이름 딴 가요제가 고복수 가요제, 돌아가는 삼각지의 배호 가요제, 신라의 달밤 현인 가요제, 목포의 눈물 이난영 가요제 등이 있다. 노래비도 아주 많다. 배호 노래비, 눈물 젖은 두만강의 김정구 노래비, 효녀가수 현숙 노래비, 신토불이 배일호 노래비, 이난영 노래비, 고복수 노래비, 조미미 노래비, 김종환 노래비, 권혜경 노래비, 진성 노래비, 임부희 노래비, 김현식 노래비, 번지 없는 주막 백년설 노래비, 현인 노래비, 고복수노래비, 황금심 노래비 등 등 수많은 노래비가 있는데... 국민가수 현미 노래비가 없어서야 말이 되겠는가 말이다. 이제라도 지인들과 의논해 노래비 건립을 추진하고 싶다. 착실한 기독교인인 현미 평안한 영면에 들도록 기도 합시다. 평소, 인연이 깊은 분들과 가요제나 노래비 건립 추진단을 구성토록 내 힘도 일조하고 싶다. 그리고 삶이 영화와 같은 작곡가 고 이봉조 씨를 하늘나라에서 다시 만나 평화스럽고 행복한 순간들이 되시길 두 손 모아 기도드립니다.
"밤안개가 가득히 쓸쓸한 밤거리, 밤이 새도록 가득히 무심한 밤안개, 님 생각에 그림자 찾아 헤매는 마음, 밤이 새도록 가득히 하염없이 나는 간다. 님 생각에 그림자 찾아 헤매는 마음, 밤이 새도록 하염없이 나는 간다." 이 노래는 외국곡을 작곡가 고 이봉조가 가사를 만들어 현미에게 선물한 불멸의 곡이 되었다.
이제 님은 갔어도 남은 이들은 그녀가 남긴 명곡들을 언제나 들을 수 있고 영상을 통해 볼 수도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라 할 수 있다. 그녀의 자녀들도 그녀의 영상과 음원을 디지털 화하여 나와 공유하며 새로운 길을 찾기로 했다. 이제 현미는 갔어도 아들 영곤이, 영준이와는 연락하기로 했다. 이번 장례식 때 내 마음을 뭉클하게 한 것은 조카 탤런트 한상진의 효성이다. 또한 제부의 앞을 보는 안목이었다. 아들들이 멀리 미국에 살고 있으니 현미가 사망하면 허둥거릴 거라 짐작하고 상조에 들고 꾸준히 월부담금을 납부했다고 하네요, 박수를 보냅니다. 누구나 한 번은 가는 길인데 왜 이번엔 이렇게 힘든지...
나이들이 있으니 재작년 남보원, 백남봉 원로 코미디언이 가고 작년엔 송해, 구봉서도 가고 여자 코미디언 이순주도 가고. 그런데 이번 현미 선생 죽음은 너무 괴롭고 오래간다.
내일이면 늦는다는 말은 정말 맞는 것 같다. 보고 싶으면 오늘 만나고, 먹고 싶은 것이 있으면 즉시 먹고, 가고 싶은 곳이 있으면 즉시 떠나고...
내 생활 자세도 이번 기회에 많이 달라질 것이다. 코로나19가 끝나 가고 공연업계도 다시 도약하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
현미 여사 잘 가세요, 본명은 김명선인데, 명선씨 잘 가세요, 사랑합니다.
한 가치의 걱정이 있다면 영화배우 엄앵란 씨는 외로워서 어떻게 될까, 한편으로는 걱정이 된다. 두 분 다 유명인 아니 대한민국의 최고의 미남자의 부인들이었는데, 남편들 떠난 후에 두 분이 서로 의지하며 살았는데...
엄앵란 여사도 건강이 안 좋다고 방송에 소개되었는데 아무튼 조심하시길 바라고 한편으론 또 다른 절친인 한명숙 씨도 건강이 많이 안 좋다고 하던데, 원로 연예인들이 걱정이 됩니다.
이제 한세대는 저물고 새로운 신세대 가수들이 선배의 자리를 채울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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